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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NERD

잔상을 포착하려다 _ 류관호

최종 수정일: 2019년 11월 17일


실은 무심하게 사라지는 모든 것들 사이에서 그 잔상을 목도하는 것에 그칠 뿐이니깐

별 볼일 없는 이유였다. 외관이 이쁘고, 느낌이 좋았으니깐. 볼프강 틸만스와 라이언 맥긴리를 남몰래 동경하고 있었으니깐 - 수년 전, 파리에서 들른 플리마켓에서 필름 카메라 판매상을 만났다. 그리고 그가 추천해주는 카메라 한 대를 샀다. 조리개, 셔터 스피드 등에 대해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채였지만, P&S, 일명 똑딱이 카메라라 초보자도 쉽게 찍을 수 있을 거라는 그의 말을 위안 삼아.  



그 뒤로 카메라와 함께 여러 곳을 걸어 다니며, 사진을 찍곤 했다. 센느 강변에서 조깅하는 사람들을, 나뭇잎을 줍던 태국의 한 어린아이를, 면회를 가서 만난 군인 친구의 얼굴을. 을지로에서 얼굴이 싯뻘게지신 채 낮술을 하시던 어르신들을 한 장 찍어드린 적도 있었다. 본래 어디든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열심히 걷다 사진을 찍었다. 무엇이든 그 순간 내 마음에 들면 셔터를 곧잘 누르곤 했는데, 금세 채운 36장을 받아본 뒤에는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던 적도, 이걸 왜 찍었지 과거의 나에게 되물은 적도 많다.

 

맥주를 마시며,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를 보며, 강태구의 앨범을 들으며.

사실 사진을 잘 찍어야겠다는 욕심은 전혀 없다. 어떠한 의무감을 가지지도 않는다. 물론, 다른 사람보다 잘 찍지도, 많이 찍지도, 혹은 전문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도 전혀 아니다. 그저 찍는 그 행위가 좋을 뿐. 조그만 뷰 파인더를 통해, 그 순간, 나를 둘러싼 그 공간의 감각과 기억을 필름 아래 가둬두는 그 행위가 너무나 좋을 뿐. 나만의 화각으로 시공간적인 감각을 조심스레 재현해내는 느낌이라 칭하면 너무 과장처럼 느껴질지 모르겠다. 많은 것을 보고 기억하려 하는 우리지만, 실은 무심하게 사라지는 모든 것들 사이에서 그 잔상을 목도하는 것에 그칠 뿐이니깐. 매일 이별하고, 또 너무 많은 것을 놓치고 있으니깐. 억지로 잡아 두려는 그 행위가 사랑스럽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충실한 재현이라 하기에는 무리가 있더라도, 용기 있는 재발견이라고 말을 붙일 수는 있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본다. 


얼마 전 읽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책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중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제가 ‘원더풀 라이프’에서 시도한 것도 자신의 소중한 기억을 이야기하려는 사람에게 카메라를 가져감으로써 피취재자의 ‘자기표현 욕구’를 촬영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돌이켜보면, 나는 그동안 피사체의 가장 자연스러운 면을 사랑하였고, 그 순간을 필름에 새기는 것을 즐겼다. 나도 모르게 자연스러운 모습의 포착이 사진의 미덕, 매력이라고 단정 지어 버린 것이다. 눈앞의 카메라를 의식하는 그 피사체 자신의 ‘자기표현의 욕구’도, 어색하게 올라간 입꼬리마저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또 사진으로 남겨보고 싶어 졌다. 카메라를 들고 거리를 나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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