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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NERD

뜯어고치는 법 _ 오정한

몇 년에 한번 그런 때가 온다. 내 생활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느낄 때. 이상하게 뭘 해도 그리 즐겁지가 않고 매너리즘에 빠지는 느낌. 혹은 무슨 일을 겪은 뒤에 내 일상이 얼마나 한심했는가를 다시 성찰하는 시간. Lost and Found라는 주제를 처음 제안했을 때 나는 그런 시기를 생각했다. 내가 누군지 잊어버리고 삶의 방향을 잃었을 때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데몰리션>이 그 질문에 대한 답이다. 아니 답은 아니고 제언이라 할 수 있겠다.

데이비스의 장인어른 필은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심장을 고치는 것은 오토모빌을 고치는 것과 같다. 모든 것을 분해하고 모든 것을 관찰해야 한다. 그래야만 다시 조립할 수 있다.” 내가 느끼기에 Lost and Found의 핵심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정체성을 잃은 사람에게 필요한 건 자신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이다. 삶의 모든 것을 관찰하고 고치는 것. 대부분의 존재에게 불만족은 어쩔 수 없이 따라다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라면 분명히 자신의 삶에서 고치고 싶은 부분이 있을 것이다. <데몰리션>은 분명하게, 불만족스러운 자신을 구원할 방법을 찾으려고 한다.


규칙적이고 딱딱한 삶을 산 데이비스는 아내를 교통사고로 잃은 뒤 집의 냉장고 회사 컴퓨터 화장실 전등 등등 주변의 것들을 분해하기 시작한다. 안에 어떤 내용물이 있는지 확인하고 뜯어보고 바닥에 펼쳐 놓는다. 관찰하고 확인한다. 자신의 일상을 해부해서 파악하려는 시도다. 데이비스는 이제야 그동안 못 봤던 일상의 사소함이 보인다고 말한다.

우리도 일상을 뜯어볼 필요가 있다. 내가 자기 전에 하는 일이 정말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인 것인지. 유튜브를 보는 게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다. 단지 스스로에게, 유튜브를 봐도 되는 정당성을 부여했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내가 매일매일 만나는 사람들과 있으면 행복한지. 외부의 압박 때문에 불필요한 관계를 지속하는 건 아닌지. 정말 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 건지. 천천히 생각하면 나름의 결론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방 정리를 제안하고 싶다. 잔소리 같아서 거부감을 느낄 수 있지만 환경이 곧 삶의 중심이 되어준다. 보고 있으면 행복하고, 내 작업의 능률을 높여주는 공간. 은근히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중요하다. 저번주에 나는 책상을 고쳤다. 원래는 책상을 벽에 붙이고 뒤에 판이 있었는데 공동 작업할 일이 생기다 보니 개방된 공간이 필요하다 생각했다. 그래서 드라이버로 판을 떼고 방의 중심으로 옮겼다. 필요에 따라서 구조를 바꾼 것이기도 하지만 마음가짐에 굉장히 큰 변화로 작용했다. 혼자 묵히는 답답한 공간에서 상대와 소통을 하는 구조로 바뀌면서, 나 또한 소통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더 귀하게 여기게 되었다.


밤에 자기 전에 어떤 것을 보고 눕는지. 지하철 타고 이동할 때 무엇을 듣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천천히 생각하다 보면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할 때가 많다. 그리 반갑지 않은 환경 속에서 일하고 생활하고 있을 수도 있다. 마냥 현타를 느끼지 말고 고민을 즐기면서 숙성 시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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