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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NERD

Peace and Love, River Phoenix _ 진현빈

최종 수정일: 2019년 11월 27일

리버 피닉스를 기억하며-


너무 밝게 빛난 탓일까, 세대를 불문하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별이 일찍 스러져버리는 경우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렇게 스러진 별은 동시대 사람들의 가슴 속 깊숙히 남게 되고, 사람들은 허망하게 곁을 떠나버린 그 사람을 오랜 기간 그리워하고 또 기억한다. 그렇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 존재감은 흐려질 수 밖에 없다. 한 세대가 가고 그 다음 세대가 오면 그 별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혀진다. 유재하가 그랬고, 제임스 딘이 그랬고, 장국영이 그랬고, 그리고 리버 피닉스가 그랬다.


‘리버 피닉스’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무엇이 떠오르는가? 어떤 이미지가 연상되는가?

만약 한 달 전에 내가 이 질문을 받았다면, 나는 침묵으로 답했을 것이다. 아니면 피닉스라는 그의 성씨에 무언가 익숙함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카메라를 응시하는 그의 눈빛

배우들에 관심을 갖다 보면 신기하게도 특정 배우에게 이유 모를 강한 느낌을 받는 경우가 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함을 주는 배우가 있는데, 나에게는 리버 피닉스가 그랬다. 내가 그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10월 31일, 도시를 환히 비추던 불빛마저 희미해져 가던 새벽 세 시 무렵이었다. 이상하게도 그 날 밤 나는 도통 잠에 들지 못했다. 잠은 오지 않고, 새벽에 할 게 없어 빈둥대다 볼 영화가 있나, 하고 영화 예매창을 뒤적였다. 한참을 헤매다, 나는 <아이다호>의 포스터를 보게 되었고, 그냥 충동적으로 그 영화를 예매했다. 얼마나 충동적이었냐 하면, 이 날 나는 새벽 3시에 아무 생각없이 조조 영화를 예매했다. 영화 예매를 결정하는 데 일말의 합리성도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 순간의 그 충동 때문에 나는 리버 피닉스와 만날 수 있었다.


영화 <아이다호>를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 영화는 1990년대 미국 독립 영화답게 굉장히 거칠다.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부드러운 장면 전환과 유려한 스토리 전개는 존재하지 않으며, 단절적인 전환과 더불어 날 것 그대로의 메타포들이 잔뜩 등장한다. 어떤 식이냐면, 등장인물이 기절함과 동시에 뚝 끊기는 것 같은 장면 전환과 함께 나무 집이 산산조각 나는 장면을 보여주는, 그런 식이다. 게다가 소재며, 플롯도 평범하지 않다 보니, 영화 자체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무한 채 영화를 보러 간 입장에서 정말 난처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 몰입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배우들의 연기 때문이었다. 난해하고 거칠었지만 인물들이 살아 숨쉬는 듯 했고, 그래서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물론 젊은 나이의 키아누 리브스의 연기도 반가웠지만, 정작 나에게 깊은 여운을 준 배우는 처음 보는 얼굴의 이름 모를 배우였다. 그는 극 중에서 유약하고 섬세하지만 동시에 장면을 통제하고 압도했다. 나는 아직도 카메라를 응시하는 그의 눈빛을 기억한다. 그리고 바로 그 눈빛은 나에게 깊은 여운을 남겼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야, 나는 그 배우가 리버 피닉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배우 호아킨 피닉스의 친형이라는 것과, 오래 전 스물 셋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사람이라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스물 셋. 내 나이 또래에 스러져 간 사람을 스크린으로 본다는 것은 정말 기묘한 일이다. 늦게 나마 그를 알게 된 사람으로서 그가 이 세상에 조금 더 오래 머물다 갔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던 그의 재능은 이 세상에 오래오래 남아있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한 여름 밤 우리가 쏘아 올린 불꽃놀이처럼, 찬연하게 빛나지만 결코 붙잡아 둘 수 없는 영혼이 아니었을까.


I don’t want to die in a car accident. When I die it’ll be a glorious day. It’ll be a waterfall.


생전에 리버 피닉스가 남긴 말이다. 그는 불꽃처럼 맹렬히 타올랐다 짙은 흔적만 남긴 채 사라져버렸지만, 지금 그가 있는 세계에서는 폭포에서 시작되어 오랜 시간 평안하게 흐르는 강같은 존재가 되어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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