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ace and Love, River Phoenix _ 진현빈
- NERD
- 2019년 11월 17일
- 2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19년 11월 27일
리버 피닉스를 기억하며-
너무 밝게 빛난 탓일까, 세대를 불문하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별이 일찍 스러져버리는 경우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렇게 스러진 별은 동시대 사람들의 가슴 속 깊숙히 남게 되고, 사람들은 허망하게 곁을 떠나버린 그 사람을 오랜 기간 그리워하고 또 기억한다. 그렇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 존재감은 흐려질 수 밖에 없다. 한 세대가 가고 그 다음 세대가 오면 그 별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혀진다. 유재하가 그랬고, 제임스 딘이 그랬고, 장국영이 그랬고, 그리고 리버 피닉스가 그랬다.
‘리버 피닉스’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무엇이 떠오르는가? 어떤 이미지가 연상되는가?
만약 한 달 전에 내가 이 질문을 받았다면, 나는 침묵으로 답했을 것이다. 아니면 피닉스라는 그의 성씨에 무언가 익숙함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배우들에 관심을 갖다 보면 신기하게도 특정 배우에게 이유 모를 강한 느낌을 받는 경우가 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특별함을 주는 배우가 있는데, 나에게는 리버 피닉스가 그랬다. 내가 그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10월 31일, 도시를 환히 비추던 불빛마저 희미해져 가던 새벽 세 시 무렵이었다. 이상하게도 그 날 밤 나는 도통 잠에 들지 못했다. 잠은 오지 않고, 새벽에 할 게 없어 빈둥대다 볼 영화가 있나, 하고 영화 예매창을 뒤적였다. 한참을 헤매다, 나는 <아이다호>의 포스터를 보게 되었고, 그냥 충동적으로 그 영화를 예매했다. 얼마나 충동적이었냐 하면, 이 날 나는 새벽 3시에 아무 생각없이 조조 영화를 예매했다. 영화 예매를 결정하는 데 일말의 합리성도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 순간의 그 충동 때문에 나는 리버 피닉스와 만날 수 있었다.
영화 <아이다호>를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 영화는 1990년대 미국 독립 영화답게 굉장히 거칠다.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부드러운 장면 전환과 유려한 스토리 전개는 존재하지 않으며, 단절적인 전환과 더불어 날 것 그대로의 메타포들이 잔뜩 등장한다. 어떤 식이냐면, 등장인물이 기절함과 동시에 뚝 끊기는 것 같은 장면 전환과 함께 나무 집이 산산조각 나는 장면을 보여주는, 그런 식이다. 게다가 소재며, 플롯도 평범하지 않다 보니, 영화 자체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무한 채 영화를 보러 간 입장에서 정말 난처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 몰입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배우들의 연기 때문이었다. 난해하고 거칠었지만 인물들이 살아 숨쉬는 듯 했고, 그래서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물론 젊은 나이의 키아누 리브스의 연기도 반가웠지만, 정작 나에게 깊은 여운을 준 배우는 처음 보는 얼굴의 이름 모를 배우였다. 그는 극 중에서 유약하고 섬세하지만 동시에 장면을 통제하고 압도했다. 나는 아직도 카메라를 응시하는 그의 눈빛을 기억한다. 그리고 바로 그 눈빛은 나에게 깊은 여운을 남겼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야, 나는 그 배우가 리버 피닉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배우 호아킨 피닉스의 친형이라는 것과, 오래 전 스물 셋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사람이라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스물 셋. 내 나이 또래에 스러져 간 사람을 스크린으로 본다는 것은 정말 기묘한 일이다. 늦게 나마 그를 알게 된 사람으로서 그가 이 세상에 조금 더 오래 머물다 갔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던 그의 재능은 이 세상에 오래오래 남아있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한 여름 밤 우리가 쏘아 올린 불꽃놀이처럼, 찬연하게 빛나지만 결코 붙잡아 둘 수 없는 영혼이 아니었을까.

I don’t want to die in a car accident. When I die it’ll be a glorious day. It’ll be a waterfall.
생전에 리버 피닉스가 남긴 말이다. 그는 불꽃처럼 맹렬히 타올랐다 짙은 흔적만 남긴 채 사라져버렸지만, 지금 그가 있는 세계에서는 폭포에서 시작되어 오랜 시간 평안하게 흐르는 강같은 존재가 되어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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