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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NERD

꼼데가르송을 입는다. 그 정신을 입는다. _ 류관호

최종 수정일: 2019년 12월 29일

반골 정신, 아방가르드, Arts of In-Between, 해체주의 등 꼼데가르송과 그 수장 레이 가와쿠보 여사를 수식하는 말은 많지만, 어떤 말도 그 정수를 포착하진 않는다. 아니 못한다는 게 더 적확한 표현일 것이다. 사실 단어의 나열만으로 본질을 표현하려는 것은 그 시도 자체만으로 매우 위험한 일이고, 그런 내재된 리스크를 차치하더라도, 레이 가와쿠보라는 인물과 꼼데가르송이라는 집단은 이미 언어 너머의 고유한 정신으로 확립되었기 때문이다. 이 정신에 대한 탐구가 선행되어야만, 꼼데가르송이라는 브랜드 자체를 오롯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가와쿠보 여사의 인터뷰 답변 및 여러 발언을 통해 그 정신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단언하지 않는 것, 정형에 반발하며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는 것, 피투된 존재로서 자유라는 불안에 대한 기투의 실현 등.


이러한 정신은 꼼데가르송이라는 브랜드명 아래 전개되는 다양한 패션을 통해 선전되고, 확산된다. 옷은 예술이지만 패션은 예술이 아니라는 여사의 표현처럼, 꼼데가르송 산하의 다양한 라인에서 매년 선보이는 독창적인 패션은 단순한 소비재 혹은 예술로서의 옷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꼼데가르송 정신의 프로파간다로써 기능하고 있다. 파리 컬렉션에 처음 진출하여 너덜너덜한 소재와 그녀만의 블랙을 통해 서양 패션계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그들이 정한 기준에 도전한 1981년 ‘Lace’ 컬렉션과 ‘Bumps’ 컬렉션, 사회에 통용되는 신체미와 아름다움의 전복을 시도한 1997 S/S ‘Body Meets Dress, Dress Meets Body’ 컬렉션, 2차원의 평면으로 3차원 상의 의류를 표현한 2012 F/W ‘Crush’ 등에서 그 정신을 느낄 수 있듯이. 또 이에 그치지 않고, 가와쿠보 여사의 재능은, 혹은 도전의식은 패션 산업 전반의 방식을 뒤집는 혁신을 이끌어 내기도 하였다. 게릴라성 팝업 스토어 개최를 통한 패션 유통 방식의 혁신, 콜라보레이션의 대중화, 그리고 브랜드가 전개하는 편집샵 Dover Street Market을 통한 오프라인 소비 경험 촉진 및 신진 디자이너 후원 등이 레이 가와쿠보 여사와 꼼데가르송이 패션 산업 전반에 이룩한 유산으로 꼽히고 있다.


준야 와타나베, 타오 쿠리하라, 케이 니노미야 또한 꼼데가르송의 패션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이름들이다. 레이 가와쿠보 여사가 수장으로서 꼼데가르송의 비즈니스 자체를 이끄는 동안, 앞서 말한 인하우스 디자이너들은 스스로의 라인을 전개하며 꼼데가르송의 브랜드 파워를 견고히 하고, 각자 다른 소비자 층으로의 확산을 꾀하는 주체가 된다. 그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딴 독립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전개 중인 후미토 간류, ‘sacai’의 아베 치토세 및 그녀의 남편이자 ‘kolor’의 디자이너 아베 준이치 등 꼼데가르송을 거쳐간 수많은 디자이너들 역시 꼼데가르송의 유산 아래 창작 활동을 펼치고 있다. 꼼데가르송에서 생산을 지원해 준 고샤 루브친스키 또한 이 명단에서 빠질 순 없을 것이다.


하루키는 적었다,

“나는 여기서 레이 가와쿠보라고 하는 한 사람의 뛰어난 디자이너를 정점으로 똘똘 뭉친 꼼데가르송이라는 집합체의 ‘부드럽고 내추럴한 자폐성’의 그림자를 보는 것이지만, 이러한 표현도 어쩌면 그들과 그녀들에게 상처를 입힐지도 모르겠다.”


뎀나 바잘리아를 위시한, 현재는 그가 떠났지만, 무명의 디자이너 집단 베트멍, 스스로를 가족이라 칭하며 최근 인상적인 컬렉션을 선보인 GmbH 등 여러 브랜드들이 현재 공통의 목표 혹은 콘셉트 아래 집단적으로 전개되고 있지만, 꼼데가르송만큼이나 개성이 뚜렷한 디자이너들이 각자의 라인을 독립적으로 지휘하면서도 집단적인 성향이 견고하게 유지되는 브랜드는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심지어, 준야 와타나베의 인터뷰에 따르면, 레이 가와쿠보 여사는 다른 인하우스 디자이너의 작업에 일체 관여하지 않고, 쇼 당일까지 컬렉션 라인업조차 확인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함에도 말이다.


결국 여러 디자이너의 창작 활동이 하나의 브랜드명 아래에서 응집력을 갖도록 해주는 것은 역시, 모든 것의 기저에 깔린 꼼데가르송만의 강력한 가치관일 것이다. 그리고 가치관이 일종의 철학으로 기능하며, 한 집단 내부에서 강력하게 공유될 때의 시너지를 현재 우리는 꼼데가르송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레이 가와쿠보 여사를 필두로 공유된 정신, 소위 말하는 ‘꼼데가르송-ism’은 굳게 닫힌 집단의 문 틈 사이로도 흘러나와, 외부의 패션계, 시장, 소비자들을 매료시켰고, 브랜드의 옷을 걸침으로써 우리 역시 그 정신을 입고, 그 일원이 된다. 꼼데가르송의 여러 옷에 새겨진 ‘LIVE FREE DIE STRONG COMME des GARCONS’, ‘Wear Your Freedom’, 그리고 ‘MY ENERGY comes from freedom and a rebellious spirit.’ 등의 말마따나.

“전 항상 디자인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가지려고 노력해요. 현존하는 관습이나 규칙, 기준은 무시해버리죠.”, 레이 가와쿠보.

수많은 브랜드가 범람하고, 하나의 트렌드가 다른 트렌드를 몰고 오는 소비 시대에 필자는 결국 오늘도 꼼데가르송을 입는다. 레이 가와쿠보를 입고, 그녀의 유산을 입는다. 브랜드의 정신을 동경하고, 꼼데가르송이즘을 실천하려 애쓰며. 기존의 관습을 부정하고 또 부정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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