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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NERD

옛날에는 몰랐는데 지금 보니 _ 백광열

괴물은 거들 뿐.

“괴물 무섭다. 앞으로 신천 근처는 무서워서 산책도 못 갈 것 같다. 현서(고아성 역)가 살았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다.” (신천은 대구의 도시 하천으로 대구의 청계천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13년 전 일이라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영화관에서 <괴물>을 보고 나서 여름방학 일기에 이렇게 적었던 것 같다. 13살 어린 아이의 눈에 <괴물>은 흉측한 괴물이 사람들을 위협하는 괴수 영화에 불과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내 신경은 온통 저 괴물이 빨리 죽어서 주인공 가족이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괴물>이 좋은 영화라고 아무리 말을 해도, 1000만 관객을 넘었다고 화제가 되어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괴물>이 좋은 영화인 것을 깨달은 것은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고 나서였다. 필자는 <인터스텔라>를 극장에서만 세 번 봤을 정도로 이 영화에 푹 빠진 사람인데, 가장 좋았던 것은 이 영화가 결국은 사람과 사랑에 대한 영화라는 점이었다. 인류 존속의 위기라는 극적인 설정이 주는 디스토피아적인 분위기, 개봉 이후 상대성 이론과 우주에 대한 과학계의 논의가 이어질 정도로 치밀한 연구를 거쳐 연출된 우주 공간이 주는 신비함과 경외감, 더 이상 답이 없어 보이는 절망의 순간 인류 구원의 열쇠가 사랑이라는 결말까지. 5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OST를 들으며 그 때의 긴장감, 감동의 순간을 되새긴다.

그렇다면 <인터스텔라>와 <괴물>이 무슨 연관이 있을까. 바로 장르는 거들 뿐이라는 사실이다. <인터스텔라>는 SF 영화일까? SF 영화가 아니었다면 이만한 명작이 되지 못했을까? 영화 속 주인공들이 말했듯이 놀란 감독은 답을 찾았을 것이다.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SF 영화만이 줄 수 있는 특수효과, 연출, 인류 멸종의 위기라는 스토리를 통해 극적인 긴장감을 최대로 유지한 채 그 속에 사랑과 희망이라는 휴머니즘을 적절히 녹여낸 감독의 역량이다. <괴물>도 마찬가지다. 한강에 괴수가 등장하고, 사람들을 위협하고, 주인공이 괴물로부터 무사히 탈출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전형적인 괴수 영화의 서사적인 긴장감은 유지한 채, 감독은 그 속에 한국 사회의 현실에 대한 비판을 신랄하게 담아냈다. 봉준호 감독 특유의 유머를 통해 너무 무거운 분위기가 되지 않도록 완급을 조절하면서 말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장르에 억매이지 않고 감독의 메시지를 적절히 녹여내는 영화를 명작이라, 또 그 감독을 명감독이라 부른다.

우주 재난 영화라는 장르 속에 삶과 관계의 소중함 이라는 메시지를 녹여내 극찬을 받은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그래비티>. 괴물이 등장하는 판타지 장르 속에 사랑과 소통의 본질을 그려낸 기예르모 델 토르 감독의 <셰이프 오브 워터> 등 명작이라 꼽히는 영화들은 장르의 한계를 넘어 본질적인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한다. 이미 2006년에 영화 <괴물>을 통해 그러한 영화를 만들며 자신의 역량을 보여준 봉준호 감독은 2019년 <기생충>으로 제 72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크리스토퍼 놀란, 알폰소 쿠아론, 기예르모 델 토르 등의 세계적인 감독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인생이 하나의 장편 영화이고 내가 그 영화의 감독이라면 나는 이 영화를 어떻게 그려낼 것인가. 이러한 질문을 받고 드라마일까 로맨스일까 스릴러일까, 장르부터 고민하고 있다면. 영화 <괴물>을 다시 한 번 보면서 기억하자. 괴물을 거들 뿐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가’ 이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

저는 축구를 잘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남들처럼 발재간이 좋아서 화려한 개인기를 부리며 수비수를 제치거나, 킥이 좋아서 멋진 패스를 전달하지도 못합니다. 그렇다고 골 결정력이 좋은 공격수도 아니죠. 그래서 저는 항상 중앙수비수라는 포지션을 맡습니다. 수비수들 사이에는 ‘수비를 잘 하기 위한 몇 가지 원칙’이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데요. 예를 들면 이런 것들 입니다.

1. 공을 가진 공격수와는 항상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2. 공격수가 돌파를 시도하기 전에 먼저 발을 뻗지 않는다.

3. 공중 볼은 무서워하지 말고 반드시 헤딩 처리해라. 뒤로 흐르는 순간 위기다.

4. 공을 보지 말고 사람을 봐라. 공격수를 놓치면 무조건 위기가 온다.

5. 처리하기 애매한 공은 라인 바깥 혹은 최대한 멀리 걷어내라. 객기부리다 뺏기면 끝이다.

이 외에도 직접 경기를 뛰면서, 형들에게 혼나면서 배운 많은 원칙들이 있습니다만 지면 관계상 생략하겠습니다. 가진 거라곤 평균보다 조금 좋은 체격과 생각보다 빠른 달리기(?)뿐인 제가 고등학생때부터 꼬박꼬박 11명 중의 한 명으로 팀에 이바지 할 수 있었던 건 경기 내내 위 원칙들을 기억하며 착실히 행동에 옮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포레스트는 똑똑한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조금 모자란 사람이죠. 하지만 신기하게도 포레스트의 삶은 잘 풀리는 듯 보입니다. 자신을 괴롭히는 친구들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달리기를 배운 소년은 전미 미식축구 대표선수가 되고, 병상에서 우연히 배운 탁구로 미국 탁구 대표선수가 되기도 합니다.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시작한 새우잡이는 태풍에서 홀로 살아남은 유일한 어선이 되어 대박을 칩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포레스트가 운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 자기 운명을 개척한 사람으로 보이는 이유는 그가 시련을 대하는 태도 때문입니다.

사실 포레스트의 삶이 행복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다리의 보조장치 때문에 어릴 때부터 괴롭힘을 당하고, 전쟁터에서는 가장 친한 친구를 구하지 못했고, 평생을 사랑했던 여자를 먼저 떠나 보내야 했습니다. 그 많은 일을 겪으면서 포레스트는 단 한 번도 남을 원망한다거나, 내 삶은 이미 끝나버렸다며 포기하지 않습니다. 바로 여기서 포레스트가 삶을 대하는 단 한 가지 원칙이 나옵니다.

‘내 앞에 오는 것이 시련이든 행운이든 진심을 다해 받아들일 것, 그리고 걸음을 멈추지 말 것.’

우리는 잘 살고 싶어합니다. 한 번 사는 인생, 즐겁고 행복하게 살다 가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똑똑하게 살려고 합니다. 덜 손해 보고, 덜 아프고, 행복하기 위해 머리를 쥐어 짜냅니다. 심지어는 아직 삶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내 삶은 이미 끝났다며, 이건 내 운명이 아니라고 받아 들이기를 거부하죠. 포레스트는 자신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이런 말을 하는 듯 합니다. 똑똑하게 살지 말고 진심으로 살라고, 그리고 어떤 시련이 와도 멈추지 말라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할까,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들에 머리가 아프다면 포레스트처럼. 머리 쓰지 말고 가슴이 시키는 대로 진심을 다해 살기를. 이 아름다운 한 편의 영화가, 당신 인생의 이야기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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