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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NERD

옛날에는 몰랐는데 지금 보니 _ 임재민

괴물(2006)

보통 '괴물'이라는 단어를 접하면 흉측하게 생겨 기괴하거나 끔찍한 행동을 일삼는 것을 떠올리곤 한다. 초등학교 6학년때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란 영화를 처음 관람하였을 때 극중 괴물의 흉측한 모습이 너무 임팩트가 강해서 펜이 닿는 모든 곳에 괴물의 형상을 그리곤 했다. 학교 책상 왼쪽 위에도 등에 물고기가 박힌 괴물이 자리했고, 취미로 연습장에 그리던 내 유치한 만화에도 괴물은 어김없이 등장했다. 유투브나 마땅한 동영상 플랫폼이 없던 시절, 괴물이 한강을 습격하는 장면을 한 번이라도 더 보고싶어서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 선생님 몰래 교탁 컴퓨터로 찾아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너무 많이 봐서 그런지, 영화의 배경음악만 들려도 머릿속에서 싱크가 딱딱 맞게 장면을 떠올릴 수 있었다. 만약 내가 주인공처럼 괴물에게 납치되어 실험실 생쥐마냥 좁은 공간에 감금되었다면 어떻게 했을까?하는 생각에 밤에 잠은 안자고 이불속에서 열심히 계획을 짰다. 그러다가 부모님이 불을 켜고 들이닥치시면 그대로 죽은 척 했다. 영화와 실사의 경계가 무너지는 것을 그렇게 간접적으로 체험도 해보고. 인천 어느 갯벌에서 망둥이를 보고 괴물과 너무 닮았다며 그렇게 좋아하고. 그렇게 2006년 내 초등학교 시절은 괴물과 함께 보냈다.

보통 고독과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사춘기가 지나고 나서야 제대로 찾아오기 시작한다. '중2병'이라고 분류짓기에는 억울하지만, '대2병'이라고 말하기엔 부끄러운, 그런 말못할 감정들과 나는 무엇일까? 하는 자아분열까지.

2014년. 나는 그 '병'을 트럭 째로 맞아버렸다. 당시 내가 뭔지 몰랐다. 특정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지.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확실히 싫어하는지도 모르는 빈 껍데기였기 때문에 일상의 죄책감과 고독, 그리고 외로움은 밤마다 침대에 나와 같이 누웠다. 그리고 낮에는 그 고독과 외로움이 분노로 바뀌면서 주변에 마구마구 표출되었다. 그 주변엔 가족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동안 쌓여왔던 인내와 불만이 원망이라는 칼로 둔갑해 갓 성인이 된 나는 부모님에게도 보여주지 말아야 할 것들을 보여주었고, 친구들에게는 철퇴를 휘둘렀다. 아마도 많이 들었던 말들 중 하나가 '너 변했어' 였던 것 같다. 내가 괴물이였다. 모두가 이해를 못하고, 내 자신도 나를 이해 못하지만, 가까이 해서는 안되는. 세상이 내게 준 시련들을 모두 남에게 탓하고 싶었던, 불타는 폭주기관차 처럼. 살면서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은 모두 느껴봤기 때문에 이젠 더이상 아무것도 느끼고 싶지 않다고 생각해서인지, 영화 '괴물'을 다시 보았을 때에도 괴물에 더 감정 이입을 하게 되었다. 극중 괴물은 자기 자신이 왜 생겨났는지 모르고 자신이 뭘 할 수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처음 한강을 습격할 때에도, 휘청거리고 방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먹고 살기에만 집중하며 심플한 삶을 살던 괴물도 고독이나 외로움, 원망을 느꼈을까. 괴물도 세상에 나서기 전엔 배고픔보다 두려움이 더 앞섰지 않았을까. 결국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으며 죽임을 당하는 괴물을 보았을 때, 통쾌함과 짜릿함 보다는 씁쓸함이 느껴졌다. 나는 그저 밥을 먹으려 한 것 뿐인데, 모두가 나를 죽이려고 했다. 나는 그저 세상 밖으로 나왔을 뿐인데. 모두가 나를 죽이려고 했다. 괴물 입장에선 얼마나 슬픈 현실일까. 대2병의 과도한 괴물 몰입은 그렇게까지 멀리 나아 갔고, 20대 초반은 또 그렇게 괴물과 함께 보냈다.

지금 내 나이는 26살이다. 굳이 만으로 세자면 24살이고 (아직도 나이에 대한 미련을 못 버렸다. 인간이라면 영원히 못 버린다!) 인생에 있어서 어느 때보다 평온하다. 처음으로 정착이라는 것을 맛 보았고, 집이 어딘지, 고향이 어딘지 말할 수 있다. 나는 내가 누군지 안다.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내 대처력은 어디까지인지 어느정도 파악했고, 나는 내 자신을 사랑하기엔 멀었지만 그래도 싫어하지는 않는다. 많은 발전이 있었다. 부모님과의 관계도 살면서 그 어느때보다 돈독하고, 친구들과도 살면서 가장 가까워졌다. 세상엔 아직 보고 느낄 감정들이 수없이 많았다. 무모하고 거만한 20대 초반의 생각과는 달리, 인생은 길고 즐길 것이 셀 수 없이 많았다. 내 괴물은 사라졌다. 죽었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눈에 보이지 않으니 신경 쓸 필요가 없어보인다.

'괴물'은 개봉 13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우리나라 괴수영화의 정상을 차지하고 있다. 지금 그 영화를 보면 그렇게까지 과도한 몰입은 하지 않지만, 그래도 마음속 한 자리에, 내 부끄러울 정도로 보잘것 없는 20대 초반의 감성을 달래주었던 영화 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인생은 성장과 탐험의 연속이고, 그 과정에서 누구나 괴물이 될 수 있다. 당연히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완전히 모른다. 누구나 적응하는 과정에서 괴물이 될 수 있지만, 진흙에서 진주를 찾듯이, 그 괴물을 거치면 좀더 낫고, 훨씬 새로우면서 진심된 것을 찾을 수 있다. 아무도 가르쳐줄 수 없기에 특별한, 우리들의 가녀린 감정들은 계속해서 변화한다. 그 순수함을 지키고 싶다. 만약 주변에서 누군가가 자기 자신이 괴물처럼 느껴진다고 하면, 나도 같이 괴물이 되어 동행해주고 싶다. 적어도 외로움은 느끼진 않겠지. 공감을 한 순간부터 우린 괴물이 아니기에.

포레스트 검프(1994)

자신의 인생을 한 줄로 요약하라 했을 때, 실제로 그렇게 명확한 답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렇다면, 타인의 인생을 한 줄로 요약하는 것은 어떨까? 예를 들어 포레스트 검프의 인생을 한 줄로 요약하라 한다면?

지칠 대로 지쳐서 호텔 방에 누워서 짐을 풀고 침대에 널브러졌을 때, 낡은 TV를 틀었더니 나온 영화가 '포레스트 검프'였다. 당시 내 나이 고등학교 2학년. 잦은 이사 생활에 유목민 마냥 이 도시 저 도시를 옮겨 다니며 '적응'이라는 프로세스가 징그러울 만큼 익숙해진, 축축하고 답 없는 사춘기를 보내고 있었다. 뭔가 더 어렸을 때 들어본 듯 한 피아노 소리가 나며 깃털 한 가닥이 화면에 들어오며 영화가 시작되고, 그 깃털에 눈을 판 사이 톰 행크스가 떡 나타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언젠가 미식축구를 즐기는 근육질 백인 친구가 이 영화에 대해 '미국인이라면 꼭 봐야 하는 영화'라고 말 한 적이 있었고, 그 당시 미국 고등학교에서 나는 아시안, 한국인이라면 당할 수 있는 인종차별은 모두 당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 영화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선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톰 행크스의 정겨운(?) 미국 남부 억양마저 듣기가 싫었다. 당시 나는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행했다. 본격적인 사회생활도 경험하지 않았고 마트에 진열된 술병들보다 어린 조무래기였지만, 포레스트 검프의 인생사를 들어줄 만큼 그릇이 넓지가 않았다.

세월이 흘렀다. 굴곡진 시간이 흐르고 미친 듯이 아침엔 불을 켜고 밥을 먹고, 밤엔 불을 끄고 잠을 잤다. 수없이 많은 호텔과 숙소를 지나쳤고 '적응'이라는 것은 아예 새로운 레벨로 내게 다가왔다. 인생은 내 기준에서 봤을 때 막장, 타인의 관점에서 코미디라는 것을 느낄 만큼 마음의 문이 닫혀갈 때 즈음, 새로 장만한 TV에서, 마치 오랜만이라는 듯 '포레스트 검프'가 나왔다. 피아노 소리와 깃털도 그대로 나왔다. 화질만 조금 더 좋아졌다. 당시 내 나이 23살, 군 휴가를 나온 상태였다. 그때 톰 행크스가 입을 열었을 때, 무언가 달라져 있었다. 듣고 싶었다. 자세히 이 사람은 어떤 인생을 살았기에 당당히 벤치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인생사를 저 밝은 얼굴로 말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그렇게 두 시간 이십 분이 훌쩍 지나갔다. 갑자기 과거의 내가 너무 초라해 보였고, 왜 그렇게 꽉 막힌 생각으로 살았는지, 왜 그렇게 불행하다는 로직을 박고 부정적으로 살아왔는지에 대한 회의감에 사로잡혔다. 그러고 나서 밖에 나가 덜 떨어진 동네 바보처럼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아. 어떤 걸 고를지 아무도 몰라. 말이 귀에 맴돌았다. 인생 한 방인데 내가 내 감정에 휘둘리고 사로잡혀 기어 다니면, 그게 진정 실패한 인생이 아닌가? 나를 이기는 방법은 없을까? 벽에 머리를 박고 죽을 생각이 아니라 저 벽을 부숴버리고 밖으로 나가는 게 하나뿐인 인생 후회 없이 살아가는 게 아닐까? 군대 복귀 전날 짧은 머리를 긁으면서 생각에 잠겼고 잠을 설쳤다. 인종차별이고 뭐고, 차라리 그때 화끈하게 받아칠걸. 조롱당하고 불공평한 일을 당해도 줏대를 가지고 자신의 신념을 따른 포레스트 검프처럼 살아가는 게 누구보다도 현명하고 용감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라는걸. 깨달은 것은 너무 늦었지만, 그래도 철없는 내가 바닥에서 조금이나마 오르막으로 한 계단 올라갈 수 있게 해 준 게 포레스트 검프였다. 클리셰 투성이인 영화라고도 할 수 있지만, 사람의 인생에 클리셰가 있는 게 특별한 요즈음이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이 영화를 다시 낡은 호텔 방, 낡은 VHS TV에서 보고 싶다. 그때의 나는 몇 살일 것이며, 또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성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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