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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NERD

잊거나, 잃거나, 찾거나 _ 전수민

최종 수정일: 2019년 11월 17일

‘정리의 여왕’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곤도 마리에의 리얼리티 프로그램 “곤도 마리에: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를 최근 넷플릭스에서 본 적이 있다. 거기서 정리의 여왕은 이렇게 말한다.


“두 손으로 물건을 만져보세요. 아직도 설렘을 주나요? 설렘이 없으면 버리세요.”


이 프로그램은 단순히 오랫동안 쓰지 않고 있던 물건들을 찾아내서 버리는 것에 초점을 둔 것이 아니다. 집이라는 개인적인 공간 안에 놓인 물건은, 필연적으로 그 공간에 사는 사람과의 짧은 역사를 함께한다. 곤도 마리에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한 장소 안에 담긴 물건의 의미를 다시 찾아보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다. 프로그램 속 사람들은 그러한 옷과 물건들을 만져보고, 설렘을 주는 것들만 두고 나머지와는 작별인사를 한다. 


에피소드를 연달아 보면서 물건의 의미를 되찾거나 잊어버린 의뢰인들의 감정이 가장 궁금했다.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것은 짜릿한 감정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아끼던 것을 다시 찾았을 때에는. 우리는 무엇을 잃고, 무엇을 찾으며 살아가는 걸까? 이에 대한 비슷한 질문들을 다루고 있는 영화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다시 마주했을 때 나에게 아직도 설렘을 주는 영화 장면들을 선정했다. 함께하는 음악의 멜로디와 가사에서 어떤 상실과 어떤 되찾음이 있는지 소개해보고자 한다.


“Shape of Water” 

Track: You’ll Never Know

기예므로 델 토로 감독의 “Shape of Water”의 한국어 제목은 “사랑의 모양”이다. 담긴 그릇에 따라 물의 모양이 변하듯, 사람의 마음에 따라 사랑도 변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에서 주인공 엘라이자 (샐리 호킨스)는 목소리를 잃은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라이자는 큰 거사를 치르기 전날,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 있는 인어 (“creature”)를 보며 힘겹게 목소리를 짜내어 노래를 부른다. 상상 속에서 엘라이자는 멋지게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지만 몇 소절 후, 목소리가 잦아들며 현실로 돌아온다. 이때 엘라이자가 부르는 노래의 제목은 “You’ll Never Know”이다. “You’ll never know just how much I miss you”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엘라이자가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도 부르고 싶어한 노래였다. “당신은 모를 거예요. 내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는지”라는 가사를 상상 속에서 부르지만, 엘라이자의 인어에 대한 사랑을 알아채지 못하는 관객은 없었을 것이다. 결국 영화의 엔딩은 어떠한 언어도 필요로 하지 않는 바다의 물 속이다. 그 안에서 엘라이자와 인어는 어떠한 상실도 상처도 없이, 그들의 마음에 꼭 맞는 모양의 사랑을 나누고 있지 않을까. 


“아가씨”

Track: 결혼식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에서는 각각 결핍을 안고 있는 두 여성이 있다. “겨울이면 훔친 가죽지갑들을 엮어 외투를 만들었다던 유명한 여도둑의 딸”, 숙희 (김태리)는 가난에 허덕이는 도둑, 소매치기이고 숙희가 돌보게 된 아가씨 히데코 (김민희)는 어렸을 적부터 이모부 코우즈키에 의해 휘둘려왔다. 그래서일까, 모든 억압과 결핍으로부터 벗어나 이 둘이 손을 잡고 들판을 가로지르는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결혼식”이다. “결혼식”은 “나의 타마코, 나의 숙희”라는 노래의 메인 멜로디를 같이 하고 있다. “나의 타마코, 나의 숙희” 트랙은 숙희가 코우즈키의 서재의 책들을 찢고 부수며 히데코를 억압에서 꺼내 주는 장면이다. 이후 히데코는 숙희가 만들어주는 크렁크 계단을 밟고, 또 넘으며 너른 들판에 도착한다. 들판을 달리는 장면, 그리고 “결혼식”은 두 인물들이 시달려왔던 억압을 이제는 잊을 수 있으며, 앓고 있던 결핍으로부터 해방되었고 새로 찾은 사랑이 완성되었음을 알려준다. 


“The Great Gatsby”

Track: Young and Beautiful

개츠비는 가난한 날에 데이지와 사랑했지만, 그가 전쟁에 참전을 한 이후 모든 것이 바뀐다. 이후 개츠비는 성공하여 돌아와서, 오로지 데이지를 위해 자신이 쌓아 올린 모든 것을 보여준다. 그 순간에 깔리는 음악이 라나 델 레이 (Lana Del Rey)의 “Young and Beautiful”이다. “내가 더 이상 젊고 아름답지 않아도 나를 여전히 사랑해줄 건가요?”라는 가사와 함께 몽환적인 보컬이 어우러져 장면을 장식한다. 그런데 개츠비가 자신의 실크 셔츠들을 데이지에게 던져 보여주자, 데이지는 갑자기 그 셔츠에 울기 시작한다. 데이지는 왜 갑자기 울음을 터트린 것일까? 데이지는 그 순간에 돈과 사랑을 맞바꾼 자신의 물질주의적인 모습과 마주한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자신이 옛날에 선택할 수 있었던 순수한 사랑에 대한 후회로 눈물을 흘린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후의 데이지는 바뀐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라나 델 레이의 노래는 여전히 나를 사랑해 줄 것이냐라는 물음에 “I know you will”이라는 확신적인 가사로 반복이 된다. 그러나 영화의 씁쓸한 끝맺음에, 그 가사는 오히려 자기 최면과 흡사한 텅 빈 대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랑의 지속적인 확인을 바라는 이 노래는 과연 개츠비의 노래일까, 데이지의 노래일까?


“Chronicles of Narnia: Prince Caspian” 

Track: The Call

판타지에 미쳐있었던 어렸을 적 나에게 “나니아 연대기”는 꽤나 큰 부분을 차지한 이야기였다. 마법과 다양한 생물체들도 가득 차 있는 공간이라니! 2008년에 개봉한 이 영화는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 나에게 설렘을 주는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나니아 연대기의 2번째 이야기인 “캐스피언 왕자”는, 탈무르인들에게 핍박당하고 있는 나니아인들이 마법의 뿔을 불어 퍼번시 아이들을 다시 나니아 공간으로 불러들이는 이야기이다. 퍼번시 아이들은 나니아인들과 왕위를 빼앗긴 캐스피언 왕자와 함께 다양한 모험들을 하게 된다. 후에 이들은 인간의 세계 (런던)으로 다시 돌아갈 날이 다가오고, 세계의 지배자인 아슬란은 첫째인 피터와 둘째인 수잔은 다시 나니아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이 마지막 장면에서 나는 항상 피터와 수잔에게 크게 감정이입을 하게 되어 내가 나니아에 돌아오지 못한 것이라도 된 양 깊은 상실감을 느끼곤 했다. 다시는 환상의 세계에 발을 들이지 못한다면 나는 현실을 배반하고 나니아에 남았을까? 이때마다 우울해진 나의 감정을 달래주는 음악은 Regina Spector의 ost, “The Call”이었다. “나를 부르면 다시 돌아올 거야. 그러니 작별인사를 할 필요는 없어”라는 가사를 항상 흥얼거리며 나는 영화의 엔딩 크레딧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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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러 가지를 잊거나, 잃으면서 살아간다. 가끔은 되찾기도 하지만. 그것은 사랑일 수도, 사람일 수도 있고 만질 수 없는 젊음이라든지, 되돌아올 수 없는 어린 날의 상상력과 같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상실로만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살펴보았던 등장인물들의 경우처럼 잃는 것이 있으면 새롭게 얻는 것도 있고, 되찾게 되는 것도 있으니까. 곤도 마리에의 정리정돈 방법에서 본 것과 같이, 시간이 오래되어 작별인사를 고해야 하는 것들도 있지만 나에게 끊임없이 어떤 감정을 느끼게 하는 존재도 확실히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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