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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NERD

정교한 횡설수설 _ 김민지

책에서 이런 물음을 읽은 적이 있다.

"정교한 횡설수설이 있을 수 있는가?"

영화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프란시스 하>의 각본에 쓰여있는 첫 장면은 소피와 프란시스가 공원에서 얼토당토않은 노래를 부르고 길 가는 사람들에게 돈 달라고 소리지르는 장면이다. 프란시스는 그렇게 해서 번 쌈짓돈을 다른 길거리 공연자들에게 주고 도망친다. 그녀는 진심이 앞서고 서툴기도 했지만 보면 볼수록 재밌는 사람이었다. 어찌된 일인지 프란시스는 항상 일을 먼저 저질러버리는데, 상황은 어색해지고, 그 상황을 수습하려고 할 때 이미 늦어버렸거나 더 꼬여버리는 딜레마를 반복하게 된다. 예를 들어 그 모습이 단편적으로 나타나는 장면이 레브가 프란시스의 어깨에 손을 올렸을 때 "eh!"소리를 내는 동시에 너무도 티내버린 본인을 인식한 프란시스가 한숨을 쉬는 부분이다. 프란시스를 처음봤을 때, 언제나 한없이 진심이었지만 남들에겐 엉뚱해서 삐걱삐걱해져버린 그녀가 나에겐 너무도 공감이 되고 재밌는, 입체적인 캐릭터로 다가왔다.

그녀의 섬광같았던 방황을 흑백으로 담은 영화 <프란시스 하>를 다시 꺼내보았다. 모든 영화가 그렇지만 이 영화는 특히 내가 어떤 사람의 시절을 엿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영화 속에서 여전히 프란시스는 가죽자켓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신호등을 건널 때 춤을 추었지만, 소피! 소피! 소피!를 외치며 뛰어나왔을 때 그제서야 본인이 맨발이었다는 걸 인식하는 프란시스가 이번엔 속상한거다. 끝까지 어느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었던 그녀는 분명 많이 힘들었을 텐데, 오히려 작품이 그리는 프란시스는 그 전보다 안정적인 생활을 하게 된다. 바로 다음 장면에서 프란시스는 전에 제안받았던 데스크 업무를 받아들이고 자신만의 작품도 만든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그녀가 관계에 있어서 바라던 믿음이 실현되는 것도 보여준다.

한 사람의 시기라는 것이 원래 갑자기 지나가는지도 모르다가 지나가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프란시스의 힘들었던 시절도 그렇게 막을 내린다. 프란시스는 현재 본인이 할 수 있는 것들 안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기로 하고 상황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무용수가 되지 않더라도 본인을 표현하는 일을 계속한다. 딱히 어떠한 존재를 위해서라거나 더 높은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재의 위치에서 본인을 해소한다는 것에는 그것이 발산하는 어느 힘이 있다. 목적 없는 정교한 횡설수설. 책의 물음에 답하자면 실수처럼 보이는 것을 좋아한다는 프란시스와 프란시스의 작품을 설명할 때 성립할 수 있는 말인 것 같다.

횡설수설의 시기는 항상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온다. 내 딴에는 한없이 정교하고 열심이었는데 한 발자국 떨어져서 바라보았을 때 내가 온 길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무력해지는 시기.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열심히 산다는 것은 사실 정말로 멋진 일이지만 노력이 더 이상 자기만족의 낭만으로 여겨지지 않을 만큼 힘이 들 때, 벅찬 느낌이 들기 마련이다. 작년 이맘때 즈음 엄마가 회사를 그만두었다. 누구보다 즐겁게 혹은 치열하게 일했지만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서라면 노동에 수반하는 수치심 따위 가벼운 안주로 삼킬 수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엄마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 시기 엄마는 많이 힘들어했다. 일해온 시간과 노력은 명분과 별개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엄마는 2년이라는 시간 동안 계속 다시 도전하면서 그 벽을 허물려고 했다. 그러나 벽은 끝까지 허물어지지 않았고 누가 말리기 전에 엄마는 스스로 지쳐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밤만 되면 잠 못들던 당신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내가 알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그 이후로 엄마는 가끔씩 그 때를 회상한다. 엄마는 오히려 잘한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이제야 엄마는 당신의 인생을 생각해보고 소중한 것들을 챙기기 시작한다. 안하던 운동을 등록했고 힘들다고 보지 않던 책도 읽는다. 그러면서 됐다 그래, 치사해서 그만둔 거라고 말하면서 그토록 열심이고 정교했던 본인을 자조섞인 말투로 위로하고는 한다.

그 시기 엄마는 참 열심히 횡설수설했다. 도무지 엄마가 무엇을 위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정신없었다. 외부적인 일 때문에 본인을 살필 여유가 없을 때 무언가를 위해 쫓는다는 것은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는 것과 같았다. 간절하게 원했기에 줄 위에서 내려온다는 건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게 벌써 작년이었는데, 그 때의 엄마랑 지금의 엄마는 사뭇 다르다. 사실 그 때는 엄마가 어디에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엄마는 아직도 스스로를 돌보는 일에 정성을 들이는 중이다.

아직 많이 겪어보진 않았지만 그 시기가 찾아왔을 때의 내가 용감한 선택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무언가를 내려놓는다는 건, 무언가를 쫓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딱 적당히 어리석을 만큼 도전할 용기가 있는 동시에 적당히 지혜로울 만큼 무수한 가능성을 감당하는 사람이고 싶다. 물론 욕심인 것을 진작에 알기에 믿을 구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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