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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NERD

일상의 권태와 새로 찾아온 설렘 사이: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 _ 이채은


시간이 지날수록 줄거리나 구체적인 장면이 기억이 나지 않는 영화도, 심지어 내 감상마저 기억이 나지 않는 영화도 많아진다. 그러나 여기, 『우리도 사랑일까』만큼은 해가 지날수록 오히려 내 기억 속에서 선명하게 자리잡는 느낌이다. 그만큼 점점 이 영화 속의 감정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도 사랑일까』를 처음 봤던 20살의 나보다 23살의 내가 더 자신 있게 ‘아, 그 영화 저도 참 좋아하죠.’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사라 폴리 감독의 『우리도 사랑일까』에는 사랑을 놓쳐버린 뒤 새로운 사랑을 찾는, 허나 그마저 또 놓쳐버린 주인공 마고(미셀 윌리엄스)가 등장한다. 이번 호를 관통하는 주제가 ‘Lost and Found’인 만큼 본고에서는 바로 이 점에 주목하여 영화를 바라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도 사랑일까』의 간단한 줄거리를 살펴보아야 할 것 같다. (여기서부터 스포주의!)


주인공 마고는 다정하고 유머러스한, 무엇보다 마고를 무척이나 사랑하는 남편 루(세스 로건)와의 결혼 생활 5년차에 접어들었다. 어느 날 홀로 떠난 여행지에서 마고는 우연히 대니얼(루크 커비)을 만난 뒤 그를 향한 강한 끌림을 느낀다. 이후 집에 돌아온 마고는 우연히 대니얼이 이웃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루와 대니얼 사이에서 갈등한다. 대니얼 또한 마고에 대한 사랑이 점점 깊어지나 자신이 마고와 루 사이를 갈라놓는 것 같아 힘들어하고 결국 멀리 이사를 가게 된다. 그의 부재를 마주한 마고는 결국 남편을 떠나 대니얼에게 향하고 그와 꿈꾸던 시간들을 보낸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대니얼과의 관계에서도 권태를 느끼기 시작하는 마고는 다시 전 남편인 루를 찾아가고 자신의 마음을 내비치나 거절당한다. 그런 뒤 마고가 혼자 놀이기구를 타는 모습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극 중에서 마고의 공항 공포증은 어떤 것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공백, 붕 떠 있는 느낌을 두려워하는 데에서 기인한다. 또한 마고와 루는 “자길 너무 사랑해서 당신 머리를 감자 으깨는 기계에 넣어 으깨고 싶어.”, “난 당신이 너무 좋아서 자기 내장을 고기 가는 기계에 넣어 갈고 싶은데.”라는 얼핏 이해되지 않는 말장난을 칠 때가 있는데, 이렇게 자극적인 ‘사랑의 대화’는 마고에게 일시적으로나마 일상의 돌파구와 같은 느낌을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점에서 드러나는 마고의 성격적 특성은 남편 루와의 일상에서 느껴지는 공백, 지루함을 못 견뎌 결국 자신에게 새로운 설렘을 주는 대니얼에게 향하는 이유가 된다. 아마도 마고에게는 남편인 루와 대니얼이 매우 다른 사람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루가 닭 요리 연구가라는 직업을 가졌고, 때문에 매일 닭 요리를 만들 수밖에 없다는 점, 매일매일 마고는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장난을 반복해 시간이 많이 흐르면 알려주려 했었다는 점, 그리고 그 이유가 단지 마고가 재미있어 할 것 같아서라는 점을 주목해보자. 루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사소한 행복을 발견하고 누릴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러나 대니얼은 자신도 역시 무언가 사이에 끼어 붕 떠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말한다. 즉 그는 마고의 공항 공포증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다. 때문에 마고는 대니얼을 두고 ‘이 사람이라면 내가 느끼는 일상의 공백을, 그리고 권태를 해결해줄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결말부를 보면 알 수 있듯 마고의 기대는 무너진다.


영화의 맨 마지막 장면에서 마고가 홀로 놀이기구를 탈 때 ‘Video Killed the Radio Star’라는 노래가 깔리는데 너무도 적절한 선곡이라 할 수 있다. ‘Radio’가 ‘Video’에 자리를 내어주었듯 언젠가 ‘Video’도 다른 존재에게 자리를 내어줄 것이다. 새로운 사랑에서 오는 설렘과 환희, 열정은 영원하지 않다. 결국 그 감정들 또한 반복되면 무뎌지기 마련이다. 루와의 사랑이 ‘헌 것’이 되었듯, 대니얼과의 사랑 또한 ‘헌 것’이 되어버린다. 영화 속에서 대니얼과 마고가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마고는 쓸쓸하며 외롭고 그녀의 눈빛은 텅 빈 듯 느껴진다.


마고의 텅 빈 듯한 눈빛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 속의 대사는 후반부에 루의 누나와 마고가 나누는 대화 속에 있다. 그녀는 마고에게 “인생은 당연히 빈틈이 있기 마련이야. 그걸 미친놈처럼 일일이 다 메울 순 없어”라고 말한다. 마고는 사랑, 인생에서 느껴지는 빈틈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일일이 메우려고 노력하느라, 그걸 메워줄 수 있는 사람을 찾느라 단지 먼 훗날 그녀가 즐거워 할 것 같아 매일 아침 몰래 일어나던 루를 놓쳤다. 이는 비단 마고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연인 관계의 초반에는 열정과 설렘이 넘치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그것에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사랑했던 이에게 이별을 고하게 하며, 새로운 사람을 찾게 한다. 그러나 때로는 그 중에서 마고처럼 자신의 선택에 후회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삶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하루하루가 즐겁고 짜릿할 수는 없다. 일상의 공백, 따분하고 무의미한 것처럼 느껴지는 나날들이 있기에 기억에 영원히 남을, 어떤 하루가 존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사랑과 인생의 빈틈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매번 새로운 것을 좇느라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영화는 묻고자 한다.

당신 앞에 놓인 이 손, 맞잡겠는가

참고로 영화의 원제는 『Take This Waltz』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당신에게 묻고 싶다.

지금 당신 앞에 놓인 왈츠를 권하는 이 손을 당신은 맞잡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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